큐레이터라는 추구미
일요일 오후, 생각 하나가 책상 위에 올라왔다. 나는 큐레이터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큐레이터를 추구미로 두고 싶은 것 아닐까. 처음에는 치워두려다, 일단 놓아두고 보기로 했다. 놓고 보면 달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비슷한 것들을 옆에 나란히 세워본다. 그토록 서고 싶었던 무대, 서보니 별것 아니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학교, 들어가 보니 별것…
두 번째 주인
새것을 잘 못 견딘다. 정확히는 새것의 그 느낌을. 택을 막 뗀 옷의 빳빳함, 아직 아무 데도 다녀오지 않은 가방의 광택. 그 상태의 물건은 나랑 아직 안 친하다. 그래서 명품도 중고로 산다. 가성비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미 누군가의 삶을 한 번 통과한 물건은 처음 드는 날부터 원래 내 것…
포화상태
내 직업의 절반은 새로운 걸 아는 일이다. 새로 나온 작가, 새로 생긴 공간, 새로 여는 전시, 새로 도는 말들. 미술계에서 일한다는 건 새로움의 입고를 직업 윤리로 요구받는 일이고, 나는 십몇 년을 그 컨베이어 앞에 서 있었다. 모르면 뒤처지는 게 아니라 결격이 되는 동네라서, 알아두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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